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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 / 배경 / 영향 / 평가

by DreamyBank101 2025. 7. 31.

1929년, 미국은 역사상 가장 큰 경제 위기인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겪게 됩니다.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으며, 실업률은 급등했습니다. 미국 국민들은 일자리를 잃고, 농민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에 팔지 못하며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국내 산업과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했습니다. 처음에는 농산물 보호를 위한 법안이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대부분의 공산품까지 광범위하게 관세가 인상되었습니다. 이 법의 제정의 배경에 대해 알아보고 법의 영향과 평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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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제정 배경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1930년 미국 의회를 통과해 당시 대통령 허버트 후버가 서명하면서 발효된 법입니다. 이 법은 수입품에 대대적인 고율 관세를 부과하여, 자국 산업과 농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명칭은 이 법을 주도한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하원의원 윌리스 홀리(Willis Hawley)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1929년 미국은 대공황에 빠졌습니다. 주식시장은 붕괴되고,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실업률은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이러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 미국 농민과 제조업체들은 값싼 외국 물품과 경쟁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에 "국내 산업을 보호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졌고, 스무트-홀리 법이 그 결과물로 등장하게 됩니다.

처음 제정할 때에 이 법은 농산물 보호가 목적이었으나, 정치적 로비와 지역 이해관계가 작용하면서 공산품까지 포함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2만 개 이상의 품목에 대해 평균 40%가 넘는 관세가 매겨졌습니다. 일부 품목의 경우, 60~80%에 이르는 높은 관세가 부과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조치는 단기간에 외국 제품의 미국 시장 진입을 억제했지만, 오히려 미국 내 소비자 가격 상승과 수출 감소를 불러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법은 단순한 경제법안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보호무역주의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쉽게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당시 미국 정치가 지역구 유권자의 압력을 받아 경제 전체의 균형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했음을 반영하는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법의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거래 정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의 이익을 맞바꾸는 식으로 더 많은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법안은 처음의 의도를 벗어나 지나치게 포괄적인 보호무역법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영향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가장 큰 파장은 미국 내부보다 국제무역 질서에 미친 충격이었습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주요 교역국들은 즉시 보복 조치에 나섰습니다. 캐나다는 미국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부과했고, 유럽 국가들 역시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제한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초반 세계는 '무역 전쟁'에 빠져들었습니다. 각국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관세를 인상하자, 전 세계 교역량은 급감했습니다. 미국의 수출은 1929년 대비 1933년까지 약 60% 이상 감소했고, 세계 무역량은 약 65%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미국 기업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었고, 보호하려던 산업은 오히려 해외 시장을 잃고 위축되었습니다.

더욱이 보호무역은 글로벌 생산 구조를 붕괴시켰습니다. 세계 각국은 미국산 자재와 기술, 기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의 단절은 글로벌 공급망을 무너뜨리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단순히 교역량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경제 협력체계 자체가 와해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흐름은 각국의 정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가 악화되자 민족주의와 극단주의가 확산되었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같은 국가에서는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결국, 경제를 보호하겠다던 관세정책은 세계대전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던 셈입니다.

특히 이 법은 미국 스스로에게도 부메랑이 되었습니다. 대외수출이 막히면서 미국의 산업은 더 깊은 불황에 빠졌고, 실업자는 폭증했습니다. 1932년 미국의 실업률은 25%에 달하며, 국민 4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경제정책이 잘못될 경우 얼마나 광범위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평가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오늘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정책 실패의 교과서"라고 불립니다. 보호무역의 단기적인 효과만 보고 장기적인 국제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지만, 그로 인해 국제 경제 협력이 붕괴되고, 세계적인 대공황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실패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에 깊은 반성을 안겨주었습니다. 고립주의적 경제 정책으로 인하여 또 다시 세계가 파탄 나지 않도록 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그 결과 1947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가 체결되었습니다. GATT는 이후 1995년 WTO(세계무역기구)로 발전하며, 자유무역의 원칙을 지키는 국제 규범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스무트-홀리 법은 또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할 때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경제 위기 때일수록 냉정한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지만, 정치적 포퓰리즘이 우선될 경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2018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무역분쟁 역시 이 법의 교훈을 상기시키며, 역사적 과오가 반복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또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자유무역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키는 사례로도 평가됩니다. 세계 각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무역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야말로 장기적 번영의 길이라는 사실을 이 법은 반면교사로써 증명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보호무역 법안이었지만,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세계적인 불황을 더욱 악화시킨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습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는 있었지만, 국제 무역은 혼자 할 수 없는 '협력의 장'임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이 법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려울수록 함께 살아야 한다. 벽을 세우기보다 다리를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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