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석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자급률이 5% 안팎에 불과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 급등이나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에너지 안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 바다에서 석유를 캐내겠다”는 시도는 단순한 산업 프로젝트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 전략이자 국민적 염원이었습니다. 그 상징적인 사례가 바로 울산 앞바다에서 진행된 대왕고래 시추입니다. 수년간 “한국판 북해유전”으로 불리며 국민적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2025년 9월 정부와 한국석유공사의 발표는 차가운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대왕고래 구조는 “경제성이 없는 구조로 판단된다”고 공식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단순한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확보된 시료와 데이터는 향후 탐사와 CCS 등 다른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왕고래 시추의 역사와 정부 발표,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동해-1 가스전, 한국 해양 자원 개발의 출발점
대왕고래 시추 이전에도 한국은 해양 자원 개발의 성과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동해-1 가스전입니다. 1980년대 말부터 울산 앞바다 동해 해역에서 석유공사가 해외 메이저 석유회사와 함께 탐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천연가스 매장이 확인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에는 상업적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자국 해역에서 직접 자원을 뽑아내는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하루 200만㎥ 이상 생산된 천연가스는 수십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양이었으며, 국민들에게 “우리도 해상 자원을 가질 수 있다”는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매장량 자체가 많지 않아 전체 국내 수요의 1% 정도밖에 충족시키지 못했고, 2020년대 들어서는 사실상 생산 종료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이 가스전을 탄소 포집·저장(CCS) 시설로 전환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는 자원 개발 경험이 기후 위기 대응으로 이어지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동해-1 가스전은 대왕고래 시추 도전의 전초전이자, 한국 해상 에너지 개발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역사적 첫걸음이었습니다.
대왕고래 시추, ‘한국판 북해유전’의 꿈
2000년대 들어 국민적 기대를 모은 프로젝트는 단연 대왕고래 시추였습니다. 울산 앞바다 심해에 위치한 대왕고래 광구는 지질 조사 결과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왔고, 언론은 이를 “한국판 북해유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노르웨이가 북해유전으로 에너지 자립을 이룬 사례와 비교되며, 한국도 자원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졌습니다.
2024년 말에는 본격적으로 탐사 시추가 시작되었습니다. 약 40~50일 동안 해수면 아래 수천 미터 깊이까지 시료를 채취하고, 지하 구조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한국석유공사는 이 과정에서 “대왕고래가 상업적으로 개발될 수 있는지를 판가름할 결정적 데이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국민의 시선은 울산 앞바다로 쏠렸고, 다시 한 번 한국이 자원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커졌습니다. 
정부 발표, 경제성 없는 구조로 최종 결론
하지만 2025년 9월, 정부와 한국석유공사는 정밀 분석 결과를 공개하며 “대왕고래 구조는 경제성이 없는 구조로 판단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저류암과 덮개암의 물성은 비교적 양호했지만, 회수 가능한 양이 충분치 않아 상업적 개발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입니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확보된 데이터와 시추 결과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상업 생산을 위한 경제성 확보는 불가능하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국민적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적지 않았습니다. 언론에서는 “수년간의 희망 고문이 끝났다”는 평가가 나왔고, 일부에서는 “애초에 과도한 기대를 부풀린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대왕고래를 단순히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확보한 시료와 데이터는 여전히 유효하며, 향후 후속 탐사와 기후 대응 사업에 활용할 수 있다.” 즉, 정부는 대왕고래를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경험 자체를 자산으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 나머지 유망구조와 해외 협력
대왕고래 구조에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동해 해역에는 아직 탐사할 6개의 유망구조가 남아 있습니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이번 대왕고래 탐사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활용해 ‘오징어’, ‘명태’ 등으로 불리는 다른 구조들을 추가로 탐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해외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이 과정에 관심을 보였으며, 일부는 지분 참여 입찰에도 참여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는 한국의 자원 개발이 더 이상 국내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해외 자본과 기술 협력이 결합된 국제적 프로젝트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정부는 “향후 대왕고래와 같은 구조는 CCS 저장소나 수소 생산 기지로 전환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단순한 석유·가스 개발을 넘어 탄소중립 시대에 맞는 활용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즉, 이번 발표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출발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7광구와 비교되는 대왕고래의 의미
대왕고래 시추의 결론은 기술적 난관과 경제성 부족 때문이었지만, 제7광구 사례는 국제 정치적 제약에 막힌 또 다른 자원 개발 이야기입니다. 제7광구는 제주 남쪽 동중국해 해역으로, 1970년대 한일 공동개발 협정을 통해 2028년까지 공동 탐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는 없고, 일본은 독자 개발을 확대하는 반면 한국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례는 서로 다르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보여줍니다. 대왕고래는 기술과 경제성의 벽, 제7광구는 외교와 국제정치의 벽에 부딪혔다는 점입니다. 결국 한국의 자원 개발은 단순히 매장 여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력, 자본, 정치적 환경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임을 시사합니다. 
마치며
대왕고래 시추는 ‘한국판 북해유전’이라는 국민적 기대와 달리 상업적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정부와 석유공사의 발표대로, “경제성이 없는 구조”라는 냉정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강조했듯이 이는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었고, 확보된 데이터와 경험은 여전히 가치 있는 자산입니다. 동해-1 가스전에서 얻은 실제 성과, 대왕고래에서 쌓은 기술과 교훈, 그리고 제7광구가 보여주는 국제정치적 한계는 한국이 앞으로 어떤 에너지 전략을 펼쳐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단순한 석유 개발을 넘어서, CCS, 수소 에너지, 해외 협력 등으로 확장해야만 한국은 에너지 안보와 기후 대응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풀 수 있을 것입니다. 대왕고래 시추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이정표로 기록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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