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활동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회 전반의 관계를 복잡하게 얽어놓습니다. 특히 외부효과라 불리는 현상은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나 피해를 주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이 배출한 연기로 주민이 건강 피해를 입는 것은 부정적 외부효과이고, 잘 가꾼 정원이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경치를 제공하는 것은 긍정적 외부효과입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면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Ronald Coase)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바로 코즈의 정리(Coase Theorem)로, 이는 정부 개입 없이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1. 코즈의 정리란 무엇인가
코즈의 정리는 1960년 로널드 코즈가 논문 '사회적 비용의 문제(The Problem of Social Cost)'에서 발표한 경제학 이론입니다. 핵심 내용은 재산권이 명확히 정의되고 거래비용이 없다면 관련 당사자들이 직접 협상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농부의 논 옆에 목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소가 울타리를 넘어 논을 망가뜨리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권리가 농부에게 있다면 목장은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보상금을 지급하고 피해를 줄입니다. 반대로 권리가 목장에 있다면 농부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목장에 보상금을 주고 울타리를 설치하게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누가 최초로 권리를 가지는지와 관계없이 거래비용이 없다면 최종적으로 효율적인 결과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코즈의 정리가 말하는 '효율성의 불변성'입니다. 결국 이 정리는 정부 개입이 없어도 당사자 간 자발적 협상으로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2. 코즈의 정리가 성립하려면
코즈의 정리가 현실에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 재산권이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누가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면 협상이 시작되기 전에 갈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둘째, 거래비용이 거의 없어야 합니다. 거래비용이란 협상을 진행하는 데 드는 시간, 노력, 법률비용, 정보 수집 비용 등을 말합니다. 이해관계자가 두 명이라면 협상이 비교적 쉽지만,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얽혀 있다면 협상비용이 급격히 증가해 효율성을 잃게 됩니다. 셋째, 참여자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신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압이나 속임수, 정보의 비대칭이 있다면 협상은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런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으면 이론이 말하는 효율적 결과는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대기오염 문제에서는 피해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가해자는 몇몇 기업일 수 있습니다. 모든 피해자가 모여 기업과 협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변호사 비용과 조정 절차만으로도 막대한 자원이 소모됩니다. 이럴 때는 정부 규제, 법원 판결, 세금이나 보조금 같은 정책이 보완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코즈의 정리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환경에서 작동하는 모델이며, 현실에서는 이를 참고해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 현실 속 코즈의 정리 사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2구역은 알짜 재개발 지역으로 꼽히며 대형 아파트 단지 건설이 계획되었으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인근 아현동 성당이 제기한 일조권과 조망권 침해 문제로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성당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햇빛과 조망이 심각하게 차단된다고 주장하며 사업시행계획 변경인가 절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였고, 2심 법원은 일조권 침해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 판단하여 성당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업은 최소 2~3년 지연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례는 코즈의 정리를 적용하기에 적합한 조건을 일부 갖추고 있었습니다. 일조권이라는 권리가 법적으로 명확히 존재하였고, 피해를 주장하는 이해당사자가 성당이라는 단일 주체였기 때문에 협상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였습니다. 인허가 절차가 이미 진행 중이었기에 법정 소송 대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조합 측은 성당의 이전 요구에 대해 신축비용 187억 원 지급을 검토하였으며, 보상이나 이전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는 거래비용을 줄이고 당사자 간 직접 협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서울 북아현2구역의 일조권 분쟁은 코즈의 정리가 이론적으로 얼마나 매력적인 해결 모델인지 보여줍니다. 권리가 명확하고 이해당사자가 소수라면 법정 다툼보다 협상을 통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거래비용이 예상보다 높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협상이 쉽게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이 사례는 향후 재개발이나 도시 정비 사업에서 권리의 명확화뿐 아니라 협상 체계의 구축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특히 구청이나 조합보다 상위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초기 단계부터 중간 협의 기구를 마련한다면 분쟁을 줄이고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을 나가면서
코즈의 정리는 외부효과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재산권을 명확히 하고 거래비용을 최소화하면 정부 개입 없이도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가능하다는 점은 경제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보다는 권리의 명확화와 거래비용 절감이라는 핵심 원리를 법과 제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원리는 경제 문제뿐 아니라 학교, 가정,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해결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협상은 명확한 권리와 낮은 거래비용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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